방언을 말하는 현상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저질러 온 죄의 본질에 대하여 거듭하여 말씀하신다. 오늘날 회중 안에서와 교파들 사이에서는, 수많은 비성경적인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음이 명백한 이단 종교와, 사이비 종교 집단들 간에 볼 수 있는 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성경에 관련한 복음 전도 주의 교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를 경악케 하는 것은, 가장 보수적인 대부분의 현대 교회들과 교파들에게 있어, 대단히 높은 정도로 이런 죄가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신약시대 교회가 점차적으로 더 범죄 함에 따라, 결국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멸하시고자 계획하셨는지를 성경에서 배울 수 있다. 그 방법은 정치적인 행위를 통한 것이 아니며, 마치 공산주의와 같은 사상을 통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거짓 복음을 통하여 일어나는 사단의 활동으로서, 그것이 참 복음과 너무도 흡사한 나머지, 심지어 택함을 받은 자라도 미혹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현상이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이용하여 멸하신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근접하여, 사단이 회중 안을 다스리는 유력한 지배자가 될 것임을 드러낸다. 데살로니가후서 2 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불법의 사람이 성전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불법의 사람은 오직 사단임이 밝혀질 것이다. 마태복음 24 장 24 절의 말씀을 읽어보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13 장 7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라고 알려주신다. 요한계시록 13 장은, 땅에서 나오는 짐승에 관한 말씀으로서, 이는 오직 거짓 복음을 통하여 권세를 누리는 사단과 그의 지배권을 지적할 뿐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단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처한 교회들을 파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로써, 회중 안의 참으로 믿는 자들인 성도들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신약시대의 교회의 몰락은, 정치적인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배도함에 따른 자체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초래된 결과이다. 이것이 어떻게 실체화되는지에 대한 실마리와, 이것에 대한 길잡이는,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을 다루신 역사적 배경을 통하여 배울 수 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신약시대 교회를 대표하는 상징, 혹은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어떠한 일이, 과연 오늘날 회중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감찰력을 가져오는가?
여러분은, 솔로몬의 죽음 이후, 하나님께서 열 두 지파의 이스라엘을 두 개의 다른 나라로 분단시키신 것을 기억하는가? 열 지파들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루어, 사마리아를 수도로 한 이스라엘이 되었으며, 유다와 베냐민의 두 지파들이 합하여,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나라, 유다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 두 나라를 상대로 시험 계획을 세우셨다. 그 시험 계획에는 그 당시의 다른 나라들이 관련되었다. 열 지파들이 죽음의 날을 맞이할 무렵, 앗수르 민족이 그 시험 계획에 관련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앗수르의 아름다운 말들과 그들의 아름다운 의복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신이 승리의 신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영적인 간음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의 민족인 앗수르의 신들을 쫓기 시작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앗수르를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멸하셨다.
그 다음, 유다가 바벨론과 앗수르의 신들을 쫓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 두 나라가 가진 아름다운 말들과 의복 등, 그들이 이룬 번영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그들의 신들을 쫓았다. 바벨론 역시 유다가 알지 못하는 언어의 민족이었다. 그 바벨론이 바로, BC587 년에 유다를 멸망시킨 민족이 되었다. 이것이 곧, 신약시대 교회의 멸망에 대한 진리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각본이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장기적인 시험 계획
시험 계획의 원칙은 성경에 되풀이 해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모세가 돌판에 쓰인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올라간 사이에, 사십일 동안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그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에 경배함으로써 시험에 실패하였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여 삼천 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 출애굽기 32).
성경에 쓰인 40 이란 숫자, 혹은 그 수에 열을 곱한 400 이란 숫자는, 주로 시험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을 뜻하는 실마리가 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 40 년 간 광야에서 체류하였다. 그리고 시험에 실패하였다. 하나님을 신뢰한 자는 몇 명에 불과했다. 이에 대하여 여호수아 5 장 6 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 (1447BC) 정확히 400 년이 흐른 뒤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점이다 (1047BC). 그 때가 곧,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 사무엘이 다스리던 때였다. 사무엘이 늙었을 때, 이스라엘이 그에게 찾아와, 그들을 다스릴 왕을 청하였다. 이에 대한 말씀이 사무엘상 8 장 4 절로부터 7 절까지에 기록되어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와서,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왕을 요구한 것이 사무엘의 마음을 거스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즉,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고 하셨다.
사울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은 지, 정확히 400 년 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적인 다스림을 원치 않은 것으로 인하여 시험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40 에 관련한 또 다른 흥미로운 시험계획이 요나서에 기록되어 있다. 요나는 니느웨 성에 사는 사람들의 사악함에 항거하여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외치도록 명령을 받았다 ( 요나서 1:2). 요나서 3 장 4 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
놀랍게도, 니느웨 사람들은 시험에 승리하였다. 요나서 3 장 5 절과 10 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신약시대에 시행된 시험 계획 가운데 가장 커다란 시험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입으시고 시험을 받으신 때였다. 누가복음 4 장 1 절과 2 절을 읽어보자.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첫 째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시험을 받았고, 둘 째 아담인 그리스도께서 역시 시험을 받으셨다. 첫 째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시험에 실패하였고, 그것으로 인하여 인류를 죄 안에 빠지게 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시험에 승리하셨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셨다. 그의 완벽하신 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가사이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게 하셨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시험하시는 원칙은 확고하게 성경에 세워져있다.
마지막 때의 교회 역시 시험계획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성경은, 말세의 교회들이 대다수에 있어서 시험에 실패할 것임을 드러낸다. 그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그 당시의 시험에 실패한 것과,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이 거듭하여 시험에 실패한 예와 같은 것이다. 교회도 역시 아담과 하와가 그랬듯이, 시험에 실패하여, 그들 또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처할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시험 계획
말세의 교회를 향한 시험계획은, 회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 그 초점을 둔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험 계획의 특성에 관하여 적어도 두 가지의 괄목할 만한 실마리를 구약성경에 주신다. 그 첫 번 째는, 신명기 13 장 1 절부터 3 절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그는 즉, 그들 가운데 일어나는 거짓 선지자의 활동을 통하여 회중을 시험하실 것을 증명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들 선지자의 성격과 그들의 가르침이 가진 본질성을 알아야 하겠다.
신명기 13 장의 서론은, 신명기 12 장의 마지막 구절이 된다. 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회중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아야 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곧 그분의 말씀으로 받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는 뜨거운 열망을 갖는 것이, 사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신성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근원이 있다고 믿는 것은, ( 가령 꿈이나 환상, 또는 방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믿는 것은, 사실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지만 ), 효과적으로 말하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똑같은 경고를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22 장 18 절과 19 절에 하신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 이 책 " 이란 성경 외에 다른 것을 말할 수 없다.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떤 종류라도, 또렷한 말로 언어화된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그것이 꿈이나 환상, 또는 어떠한 방법을 통한 것이라 할지라도, 성경이외에 더하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성경의 신성한 계시 이외에 아무것도 더하지 않으시므로, 누구라도 이러한 것을 듣고,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다면, 효과적으로 그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18 절에 우리에게 경고하시기를, 누구든지 이 죄를 범하는 자는 성경에 기록된 재앙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즉, 그 사람은 영원한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신명기 13 장은 선지자가, 곧 꿈꾸는 자라고 말한다. 즉, 그는 자신이 꾼 꿈속에서 들은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는다. 이적과 기사, 혹은 그가 꾼 꿈속에서의 예언적인 서술의 언어가 실제적인 것이므로, 자신이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은 것으로 믿지만, 사실, 그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므로, 결국 그것은 사단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가 꿈이나, 혹은 환상에서 들은 메시지를 하나님의 것으로 가르칠 때에는, 그가 사람들에게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도록 권장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회중안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으로 심각한 죄가 된다. 신명기 13 장에서는, 이런 거짓 선지자는, 비록 그가 회중의 사랑하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죽임을 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신명기 13 장의 이 구절에서의 핵심이 되는 문구는 이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이 문구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시험계획에 대하여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이 아닌 다른 곳에 근원을 둔 거짓 선지자들로 하여금, 자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회중안에 존재하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그가 회중을 시험하실 것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신다.
고린도전서 14 장은 마지막 시험 계획에 관한 실마리를 준다.
교회를 대상으로 하여 올 마지막 시험계획에 있어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두 번 째 실마리가 되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일이다. 이에 대한 표시판은 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4 장 21 절에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
이 구절에 담긴 실마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짜여진 조성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다. 고린도전서 14 장은 고린도의 교회 안에 있었던 방언의 현상에 대하여 말한다. 회중에 있던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은사인 방언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본인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를 받았었다. 고린도전서 14 장 2 절에 하나님께서 이를 가리켜,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 말씀하신다.
그 외에, 회중 안의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해석하는 은사를 주셨다. 그리하여, 방언으로 받은 메시지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주신 해석하는 은사를 수단으로 하여, 회중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석되었다. 고린도전서 14 장 5 절은 방언이 해석되면, 그것이 회중에게 덕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일은,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던 정당성을 지닌 영적인 사건이었다. 그 당시 그들은, 지금 우리가 구약성경이라고 부르는 성경만을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자연과 초자연의 침묵을 깨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하여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아가보 ( 사도행전 11:28) 에게 메시지를 주시고 계셨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정당하게 더하여진 말씀이 되었다. 그 때는 아직까지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부수적인 메시지를 가지고도 그 당시의 교회들은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그 당시 사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메시지를 받는 일은 가능한 일이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방언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자들이 있었다. 그 메시지들은, 기도의 형식, 또는 찬미나 계시의 형식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그 메시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그 당시 문서화된 하나님의 말씀에 정당하게 더해졌다.
방언의 현상에 대한 말씀들 가운데 ( 고린도전서 14:21), 구약성경 율법에 기록된 참조로서, 주께서 말씀하시되, 그가 방언으로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하나님께서 방언에 대하여 신명기 28 장에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던 무렵에 모세가 그들에게 설교하였다. 그것은, 모세가 백성에게 전하는 복음만으로는 그들이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 이유는,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신명기 28:47)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반역한 결과로 형벌이 내려졌다. 이는 신명기 28 장의 나머지 구절들에서 선포된다. 48 절과 49 절이 그 경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
이것은 고린도전서 14 장에서 말하는 방언의 현상에 대한 참조로서, 율법이 담긴 구절이다. 이스라엘의 열 지파들은, 그들의 적이었던 민족 앗수르와 영적인 간음을 저지른 후 앗수르에게 멸망당하였다. 그들의 영적 반역의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의 민족 앗수르를 인하여, 그들을 멸망시키게 하셨다. 그 일이 벌어지기 몇 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에 대한 마지막 경고를 그들에게 주셨다. 그 경고는 이사야 28 장 11 절과 12 절에 다음과 같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뒤에 따라온 후속은, 그 후 122 년이 지난 뒤에 일어났다. 유다 민족은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의 민족인 바벨론을 쫓아 음행 하여, 결국 바벨론은 BC587 년에 유다를 멸망시킨 나라가 되었다. 그 일이 있기 몇 년 전에, 그들은 예레미야로부터 경고를 받았었다. 예레미야 5 장 15 절로부터 17 절까지에 걸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 전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떼와 소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신다. 이 구절 역시 고린도전서 14 장 21 절의 불길한 언어에 관한 참조가 된다.
두 가지 중요한 원칙들
우리가, 두 가지 중요한 원칙들을 고려할 때, 신명기 13 장, 신명기 28 장, 고린도전서 14 장,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명백하게 말세의 교회와 연결되는 것을 발견한다.
그 첫 번 째 원칙은, 고대 이스라엘이 신약시대 교회의 상징이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신약시대 교회의 영적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가진 본질적인 면을 조명해준다.
두 번 째 원칙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시험계획을 세우신다는 점이다. 신명기 13 장에서는, 교회 내에서의 시험계획이, 초자연적인 메시지를 받는 거짓 선지자들을 관련시킬 것임을 보여준다. 거짓 선지자들은 회중들에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근거에서 온, 자신들의 초자연적인 경험을 보여주면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신들을 쫓도록 권장할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의 성경적인 원칙들이 말세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시는 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방언 : 말세의 시험 계획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왜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전서 12, 13, 그리고 14 장에서 방언의 현상에 대하여 그토록 광범위하게 기록하셨을까? 어떤 사람은 이러한 일시적인 현상에 대한 말씀을 성경에서 읽고 기이하게 여길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이후 약 몇십 년이 지난 후에,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 책에 대한 환상을 받았다. 요한계시록은,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는 자는 그 책에 적힌 재앙의 대상이 될 것을 경고한다. 즉, 하나님으로부터는 환상이나, 음성, 방언, 혹은 그 밖의 어떤 것을 통해서라도 더 이상의 계시가 있을 수 없음을 표명한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에서 있었던 방언의 현상 역시 종결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에서 그가 쓰신 것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보낼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방언의 현상은 잠깐 있었던 일로서, 오직 고린도 교회에만 한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에 있어서도 그것은 일시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왜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하여 그토록 광범위하게 기록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이 지속된다.
그에 대한 해답은, 방언의 문제에 관하여 거론한 고린도전서의 세 장을, 말세의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시험장으로 우리가 깨달을 때에 비로소 얻어진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심으심으로써 우리의 첫 부모를 시험하시는 시험장으로 사용하셨다. 사단은 그 시험계획을 이용하여 인류를 죄에 빠지게 하는 기회로 삼았다. 신명기 13 장에 기록된 시험계획과 경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로 하여금 회중 안의 몇 사람들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시험계획을 세우셨으나, 그 기회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사단이다.
하나님께서, 고린도전서 12, 13, 그리고 14 장에 기록된 방언의 현상을, 말세의 교회를 시험하시는 시험장으로서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안에 참 된 방언의 은사를 잠시 주셨던 것은, 말세의 교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실성의 여부를 발견하시기 위함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에 있는 한 나무의 열매를 제외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허락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는 데에 충분한 향기롭고 달콤한 열매들로, 넘치는 축복을 아낌없이 주셨다. 루시퍼는, 인간이 하나님보다는 사단을 섬기기를 원했고,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동산 한 가운데에 심은 금지된 한 나무의 열매를 맛보지 않으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그들을 유인하였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교회는 구원에 참여하는 넘치는 축복을 받은 기관으로 여김을 받아왔다. 그 축복들은 누구라도 감당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훌륭한 축복들로서,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충분하였다. 고린도 교회 내의 몇 사람들이 잠시 누렸던 한가지의 일시적인 축복은, ( 하나님으로부터 알 수 없는 언어를 통하여 부수적인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은사로서 ) 마침내 위대한 축복이 되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기 전에 잠시 주어졌던 작은 축복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 전체가 담긴 기록 (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 을 우리에게 주시고, 고린도 교회에서 잠시 누렸던 작은 한 가지의 축복을 금하심으로써,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축복을 최대한으로 확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지혜로 그 기록을 보존하시어, 참으로 그가 방언의 현상에 대한 기록을 성경에 두드러지게 시사하셨다. 그 기록이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써 말세 교회를 위한 시험장이 된 것은, 마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인류의 시작에 있어 시험장이 되었던 것과 같다.
사단은 방언을 이용하여 교회를 파괴한다.
사단은 이 시험장을 마지막 기회로 삼아 외형적인 교회를 파괴함으로써, 그리스도 위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는 일에 이용한다. 그는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에덴 동산의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함으로써, 그들을 무너뜨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는 말세의 교회로 하여금 금지된 방언의 은사를 즐기도록 권장한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시험장을 세우실 때, 루시퍼로 하여금 하와를 유혹하기에 쉽도록, 적어도 포장된 도로와 같은 길이 되는 언어를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 그 금지된 나무에, 마치 " 금지된 " 이란 이름과 같이 노골적으로 금지하는 이름을 붙이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름을 붙이셨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였다. 분명히, 그 나무의 이름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도대체 그 나무의 열매가 지닌 비밀의 능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이것은 사단의 유혹에 대한 하와의 반응으로 증명된다. 창세기 3 장 6 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사단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나무의 이름을 설명함으로써 탐욕에 찬 하와의 마음을 자극하였다. 창세기 3 장 5 절에서 사단은 하와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분명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 라는 이름을 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우리의 첫부모를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데에 이용할 수 있는 제목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죄를 만드신 분이 아니시며, 어떠한 죄도 지니지 않으신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끈질기고 정당한 시험계획을 만드시므로, 그 나무의 열매가 그 모양과 이름에 있어서 (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6 절 ), 특별히 탐욕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을 상대로 역시 대단히 강력한 시험장을 세우셨다. 이스라엘이라 불리던 북 왕국의 열 지파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의 민족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였다. 이스라엘이 시험에 낙방할 무렵,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에게 축복을 내리시어, 그들로 하여금 수리아를 정복하고 ( 왕하 16: 9), 모든 문제의 해결안을 가진 민족으로 보이도록 하셨다. 에스겔 23 장 5 절과 6 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곧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 오홀라 " 는 사마리아에 있던 이스라엘의 수도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앗수르는 정치적인 번영과 세상적인 성취도에 있어서, 열심을 내어서 쫓아 모방할 만한 우수한 민족으로 보였다. 이와 비슷하게,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남 왕국의 유다 역시 앗수르와 바벨론의 아름다움과 능력과 번영으로 인하여 매혹되었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누린 아름다움과 능력, 그리고 번영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결과였다. 이 두 나라는 하나님께 완전히 불순종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유다를 시험하시는 계획에 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원조를 구하다.
성경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앗수르와 같이 사악한 민족을 이스라엘에게 성공적인 민족으로 보이도록 허락하셨는지, 그에 대한 생생한 설명을 준다. 이사야가 살던 시절에,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수리아에게 위협을 당하였다. 상황은 몹시 암담하였다. 역대하 28 장은, 사악한 유다의 왕 아하스와, 이스라엘과 그리고 수리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유다에 내리신 그 형벌의 결과를 드러낸다. 역대하 28 장 5 절과 6 절을 읽어보자.
"그러므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람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가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 이만명을 죽였으며"
유다의 사악한 왕 아하스와, 유다의 온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여 애곡함으로 호소했어야 한다. 그들은 마치 요나가 니느웨 백성들에게 경고했을 때, 그들이 했던 것처럼 베옷을 입고 회개했어야 한다. 그들은, 아하사밧 왕이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 유다를 쳐들어 왔을 때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매달려 애절하게 호소했어야 한다 ( 역대하 20). 그러나 성경은 유다가 오히려 앗수르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다고 기록한다. 열왕기하 16 장 7 절을 읽어보자.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불신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나타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많은 유다를 사악한 앗수르를 통하여 구하셨다. 이에 대하여 열왕기하 16 장 9 절에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
앗수르가 수리아를 정복하였다. 최근까지도, 수리아는 독립국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이용하여 열 지파들을 멸망시키셨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독립국가로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두 나라인, 수리아와 북왕국 이스라엘이, 이방민족 앗수르의 힘에 의하여 제거된 것은, 유다에게 위협이 되었다.
이 정보가 주는 요점은, 하나님께서 앗수르에게 번영을 가져다 주신 것은, 유다에게 닥칠 시험 계획을 강화시키고자 함이었다는 점이다. 앗수르의 번영과 바벨론의 번영으로 꽃피운 수려함은 그들의 신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많은 능력과 함께 더 많은 신뢰를 받을 가치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신성하신 목적으로, 앗수르에게 승리를 주셨으나, 유다는 앗수르가 섬기는 신들이 우월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영적 상태는 역대하 25 장 14 절에 적힌, 유다의 또 다른 왕 아마샤가, 에돔, 혹은 세일이라 불리는 원수의 신들을 섬겼던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그 구절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역대하 28 장 22 절과 23 절은 사악한 왕 아하스가 저지른 그것과 비슷한 행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험 계획을 강화하신다.
하나님께서 시험 계획을 세우실 때, 그가 선택하여 쓰신 단어들을 통하여, 혹은 하나님의 원수들이 성공적으로 보이게 하심으로써, 그 시험을 강화하신다. 말세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시험 계획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관련하여, 그리고 복음의 원수들이 즐기도록 허락하신 성공에 관련하여, 그와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말세의 교회에 내린 시험의 엄중성을 지적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예가 되는 단어를 사용하신다. 그 첫 째로,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안에서 방언을 말한 자들이 영으로 비밀을 말함으로 덕을 세웠다고 말씀하신다 ( 고린도전서 14: 2-4). 분명한 것은, 누구든지 믿는자로서 개인의 덕을 세우거나, 믿음을 쌓는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이나, 이 말씀이 적힌 문맥을 보면, 읽는 자들이 조심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고린도전서 14 장 39 절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다.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이 말씀은 방언하는 것이 죄라는 뜻인가?
세 번 째 예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사 복음서 가운데 세 복음서에서,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성령 훼방죄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것은 또한 요한일서 5 장에, "사망에 이르는 죄 " 로 설명된다. 이 죄가 유일한 죄임은, 그 죄를 지은 자는 결코 다시는 용서함을 받지 못한즉,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죄가 더욱 다른 것은, 사실상 이 죄를 범한 자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하나님께서 인류를 그 죄로부터 보호하신다는 점이다.
그러나, 예수님 사역 당시의 서기관들은 이 죄를 범하였다. 마가복음 3 장 22 절에서 그들에 관하여 말하기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라고 하였다. 이 무서운 죄에 대한 반응으로서,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3 장 28 절과 29 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30 절에서, 그는, 성령훼방죄란 그리스도께서 성령이 아닌, 사단의 능력 아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설명하신다. 예수님을 혐오하여 그가 죽기를 원했던 서기관들은 이 무서운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단의 지배 아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고자 원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성경은 오직 마가복음 3 장과 마태복음 12 장의 서기관들만이 그 죄를 지은 것으로 언급한다. 오늘날 가장 강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사단의 능력을 받았다고 확신하게 되기는 힘들다. 세상에서 이 죄를 지은 자가 있을지는 몰라도,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절대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주가 되시는 문제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예수님이 구주이심에 최소한의 관심이 있다면, 이 무서운 죄를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이 죄에 대하여 성경에 이토록 광범위한 기록을 남기셨을까? 그것이 성경에 있음으로 해서, 성령 훼방죄가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으로 잘못 가르침을 받아온 참으로 믿는 자들에게 슬픔을 가져오게 하였다. 참으로 믿는 많은 사람들이, 젊었을 때 거듭하여 그리스도를 거절한 경험이 있다. 그들이 훗날 구원을 받았을 때, " 내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시달린다. 이 죄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있는 한가지 이유는, 말세의 교회에 대한 시험의 엄중성을 가중시키기 위함이다.
성령 훼방죄의 의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단순하게 확대되어, 교회가 사단의 능력 아래 있다고 믿는 것이, 곧 성령 훼방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가져올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사람이 특정한 교회나 복음을 조사한 결과, 그것을 사단의 것으로 단정한다면, 그 판단 자체가 그 사람을 성령 훼방죄를 짓는 위험에 처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결론이 옳지 못한 것임에도, 방언을 믿는 자들에 의하여 널리 가르쳐진다. " 방언의 복음 " 이 사단의 것이라고 감히 판단하는 자는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는 이상, 그 복음을 사단의 것이라고 감히 결론을 내리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 결과로, " 방언의 복음 " 은 심지어 성경에 신실하게 남아 있기를 원하는 자들까지도 그것을 비난할 수 없도록, 비난의 대상에서 보호를 받는다. 성령 훼방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들이 비록 " 방언의 복음 " 이 가진 많은 교리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참 복음의 한 면으로 고려해야 함을 인정하도록 강요당한다. 이것으로서, 결국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 방언의 복음 " 을 쫓도록 권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참 복음으로 확인되는 신원에 있어서 안전해 보이는 특성들을 방언 시험 계획에 정립해 놓으신 것이다.
성령 훼방죄의 올바른 이해는, 예수님께서 구세주로서 오셨을 때, 그가 사단의 능력 아래 있다고 믿었던 것을 말한다.
방언 운동의 성공
전 세계적으로, 이 말세의 시험 계획에 실패하는 사람들과 회중의 숫자는 한없이 증가하고 있다. 소위 " 카리스마 적 운동 " 이라고도 불리는 방언의 운동은 마치 산불과 같이, 삽시간에 교회들을 휩쓸고 간다. 사실상 거의 모든 교단의 모든 교회들이 두 팔 벌려 개방함으로써 이 운동을 환영하였다.
수 세대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신앙과 교파들 간에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 어느 시도도, 카리스마적 운동만큼 진전을 보인 예가 없었다. 로마 카톨릭,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기독교적인 윤리와 신원을 같이한 모든 복음들이, 카리스마적 깃발 아래 형제애를 발견하게 되었다. 방언의 현상을 옹호하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성령의 능력을 훌륭하게 발휘한 선전으로 보인다.
성경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교회는 점차적으로 배도의 길을 걷고 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이러한 운동을 성령의 활동으로 믿게 하신다. 그들은 그것이 사단의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방언의 현상을 수단으로, 사단은 예전에 미처 생각지 못한 정도로 참 복음을 물리치고 있는 듯 보인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교회 ( 유다와 이스라엘 ) 에, 그들이 알지 못한 언어의 민족이며, 그들과 영적 간음을 저지른 민족을 통하여 심판을 가져오셨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들을 이용하시어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키셨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교회와 교단들은 소위 " 방언 " 이라 불리는 알지 못하는 언어를 특색으로 내세운 복음들을 맹목적으로 쫓음으로써, 통탄할 정도로 영적 간음을 저지르고 있다. 이러한 거짓 복음들은 교회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용된다. 그것으로 인하여 파괴된 교회를 우리가 보게 될 것이다.
회중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예전보다도 더 활발하고 영적으로 성공한 듯 보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리스도의 소명이 온 세상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듯 보일지 모른다. 개혁운동가들의 수는 나날이 증가하여 교회들의 좌석을 채우며, 신학교들은 장래의 목사들로 가득 찬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회들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였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불법의 사람이 성전의 자리에 앉는 것 역시 계속하여 증가한다.
방언의 운동에 있어 항상 존재하는 듯 보이는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이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여전히 말씀하고 계신다는 원칙을 인정하는 것이다. 부수적인 정보가 소위 방언이라 불리는 알 수 없는 언어, 또는 환상, 꿈, 그리고 음성 등을 통하여 계시된다고 믿는 것이다. 꿈이나 환상에 흥미를 가진 곳에는 언제나 방언에도 관심이 있다. 마찬가지로, 방언에 흥미를 둔 곳에는, 역시 꿈이나 환상에도 관심이 있다. 참된 복음은, 오직 성경과 성경 전체의 권위로써만 그 한계를 둔다. " 방언의 복음 " 은 성경과, 그 외에 방언이나, 꿈, 환상, 그리고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여기는 메시지를 권위로 한다. 그것이 참 복음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으며, 그것이 참 복음이 아니라면, 거짓 복음일 뿐이다.
이적과 기사
방언의 운동이 가진 두 번 째 특성은, 이적과 기사에 대한 관심이다. 주님과 열 두 사도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기적적인 치유는 가장 흔히 기대되는 기적이다. ( 소위 성령에 의한 살해라고 불리는 ) 뒤로 넘어지는 현상은 초자연적인 현상의 증거이다. 기적적인 치유가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차원에서 설명이 가능한 반면, 뒤로 넘어지는 현상은 세상적으로나 육신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는 듯 보인다.
방언이나, 환상 등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듯 보이는 현상은, 육신적인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것은 환각증세이거나, 혹은 개인의 잠재의식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사단이 일으킨 초자연적인 활동으로서, 참된 복음만으로 만족하지 않은 자들의 마음을 사단이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초자연적인 활동일 때에는, 이적이나 기사라고 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고린도전서 14 장 22 절에, 방언으로 말하는 활동을 이적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 이적과 기사 " 를 말세에 관련하여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참조들이 참된 교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에 관련한 모든 참조들이 사단의 활동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4 장 24 절은 이렇게 말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이 가져오는 복음이 참 복음과 너무도 흡사하여, 심지어 택하신 자라도 할 수만 있으면 미혹케 할 것임을 가리킨다. 택한 자들이란 참으로 믿는 자들로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선택하신 자들이다. 그들이 미혹당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굳게 잡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이 가진 이적과 기사로서 분별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2 장 9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성전의 자리에 앉게 될 것임을 이렇게 경고하신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요한계시록 13 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로서 올 사단에 대한 참조로서, 13 절과 14 절에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
요한계시록 16 장 14 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날 직전에 올 사단의 활동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
하나님께서 이 참조 구절들을 통하여, 그가 기적을 앞세우는 거짓 복음들을 수단으로 말세의 교회에 심판을 가져오실 것을 시사하신다. 거짓 복음들을 가진 교회들 안에 이적과 기사가 현저하게 나타남에 대하여 이상히 여기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참 복음을 가지고 오셨을 때에, 기적들을 행하심으로써 그 복음의 진실성을 증명하셨다. 요한복음 20 장 30 절과 31 절을 읽어보자."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사단이 말세에 방언을 내세운 거짓 복음들을 가지고 올 때에도, 역시 그는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그의 복음의 신빙성을 증명해 보이려 시도한다. 성경에, 오직 두 가지 기적이 그에게 주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첫째, 방언과 환상을 통하여 자연과 초자연의 침묵을 깨뜨리는 능력, 그리고 둘 째, 그가 초자연적으로 사람들을 뒤로 넘어지게 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거짓 복음들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하여 사단은 거짓된 이적과 기사들을 가져온다. 즉,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심지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기적을 외치며,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을 것이다.
테레비젼과 같은 현대 문명의 통신 수단은 이러한 거짓 복음들의 전파를 촉진한다. 상식적으로 참복음에 신실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사람들도, 간혹 그들의 사택에서 이러한 거짓 복음들의 감언과 꾀임에 친숙해져서, 부지중에 그들은, 독이 든 복음의 물을 깊숙이 들이키고, 그들 자신의 교회에 그러한 재앙이 찾아올 때, 그것을 참 복음의 한 면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된다. 우리의 눈 앞에서, 교회들이 차례, 차례, 오직 성경과 성경 전체를 참 복음으로 여기지 않는 거짓 복음들에게 항복해 나간다.
교회의 파괴는, 매우 높은 정도로, 방언의 시험 계획을 통하여 성취된다. 사단이 회중으로 하여금 방언과, 그리고 이적과 기사의 거짓 복음들을 받아들이도록 속이는 가운데, 교회는 눈 먼 상태로 시험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회중은 마지막 환난 동안 계속하여 존속할 것이나, 점 점 더 거짓 복음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이다. 참되게 믿는 자들은, 회중이 거짓 복음들을 쫓기 시작할 때에, 자발적으로 교회를 떠나거나, 떠나도록 종용받게 된다. 교회 안에 남은 회중은 비록 자신들은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상 사단을 섬기는 것이 될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불
민수기 16 장을 보면, 고라, 다단, 아비람의 세사람이 모세에게 반항한 기록을 읽을 수 있다. 민수기 16 장 2 절과 3 절을 읽어보자.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이 반역의 결과로서, 땅이 열려 그 세 사람의 가족을 삼키고, 반역자들 250 명이 불로 소멸을 당하였다. 민수기 16 장 35 절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 오십인을 소멸하였더라"
그러나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민수기 16 장 41 절에서 본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에 더해진 이러한 반항의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염병을 가져와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오직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아론의 즉각적인 속죄로 인하여,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죽임을 당할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러한 무서운 심판과 그에 대한 사후 처리에 대하여 민수기 16 장 45 절로부터 48 절까지에 걸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 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이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반역한 인류를 대표한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백성들을 죽인 염병과, 하늘에서 내려와 250 명을 소멸한 불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에 선 아론 자신과, 아론이 드린 속죄는, 대속하신 모든 자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내릴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 안에서 구원의 복음에 대한 많은 면을 볼 수 있다.
사단이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하는가?요한계시록 13 장 13 절에서, 성경은 사단이,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말은, 언제인가 때가 되면, 사단이 실제로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이러한 현상이 현재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제시할 수 있으나, 그것이 실제의 불이 아니라,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것과 동등한 활동일 뿐이다. 이것이 가능한 지의 여부를 성경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사단이 그의 사자들을 통하여 믿는 자들을 위협한 두 가지 뚜렷한 예가 되는 사건 안에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악한 자들을 소멸한 기록이 있다.
열왕기하 1 장에, 이스라엘의 악한 왕이 엘리야를 취하러 오십부장과 오십인을 보낸 기록이 있다. 믿는 자들을 공개적으로 협박하는 사단의 면전에서, 믿는 자들을 대표하는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오십부장과 오십인을 소멸한 사건이다.
요한계시록 20 장에서는, 사단이 땅의 사방 백성으로 성도의 진을 공격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이 백성들을 소멸하는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사단이 하나님의 나라를 공격하므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어야 했으나, 그 대신, 사단이 불로 소멸당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다른 활동이 취해진 때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것과 동등한 활동이다.
그 사건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계셨을 때, 유다와 성전 관리들이 예수님을 데리러 왔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사단이 조금 전 유다의 마음 속에 들어갔으므로, 사단 자신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사단은 예수님께서 유다를 가리켜 " 마귀 "( 요한복음 6:70-71) 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유다와 성전관리들에게,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하시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로라" 고 하셨다 ( 요한복음 18:4-5).
그 순간, 열왕기하 1 장에 기록된 엘리야의 행동에 따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20 장에 기록된 바, 마귀의 세력에 대항한 행동에 따라,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를 결박하러 온 원수들을 소멸하셔야 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행동을 취할 수 없으셨다. 그는 성전 군졸들에게 이와같이 선포하셨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 누가복음 22:5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가셔야 했고,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는 결박당하셔야 했으므로, 그 원수들을 멸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오직 그렇게 하셔야만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결박당하시고, 잡혀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주셨으나, 그리스도께서 그 원수들을 멸하실 수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는 대신, 그가 "내로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로 하여금 뒤로 넘어져 땅에 떨어지게 하셨다 ( 요한복음 18: 6). 이는 그가 원수들을 멸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시사하시기 위한 대리 행동이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3 장 13 절에서, 사단이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사단이 실제로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할 수 없음을 또한 알려준다. 여러분은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 사이에 있었던 대결을 기억하는가 ( 열왕기상 18)? 사단을 우두머리로 한 바알의 선지자 450 명이 하늘로부터 그들이 만든 제단에 불을 내리게 하고자 하루 종일 노력했으나, 그 일에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와 반대로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그가 만든 제단에 불을 내려주실 것을 간청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단에 바친 제물과 나무, 심지어 돌까지 모두 불사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단이 실제로 하늘로부터 불을 내릴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 그를 잡으러 온 자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소멸하는 대신 그들을 뒤로 넘어지게 하셨고, 그 때에, 사단이 그 곳에 있었다 ( 요한복음 18). 이것이 곧, 사단이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할 것이라는 예언에 대한 해답이다. 그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는 것과 동등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사람들을 뒤로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13 장의 말씀을 충족시키는 길이 된다. 오늘날 거짓 복음들 간에,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하여 사람들이 뒤로 넘어지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 간에는, 이러한 현상이 소위 " 성령에 의한 살해 " 라고 불린다. 사단이 하늘에서 실제로 불을 내리게 할 수 없는 이유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행적을 따라,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하는 것의 대리로서, 사람들을 뒤로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스가랴 13 장 8 절과 9 절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삼분지 일은 구원받은 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견뎌내신 의미에서, 그들이 불 가운데를 지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한 지옥의 불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히 사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자로 설 수 있다. 우리는 그의 백성이며,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또 다른 역사적 예로서, 열왕기하 1 장에서, 세 번에 걸쳐 오십부장이 그의 부하 오십인을 거느리고 엘리야에게 온 기록을 우리가 읽는다. 처음 두 번에 걸쳐 온 무리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소멸 당하였다. 세 번 째 부장과 그가 거느린 군사들은 자비를 호소하여 목숨을 구하였다. 목숨을 구한 무리들은 구원받은 자들을 상징한다. 구원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품 안에서 안전하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불로 소멸하시고, 새하늘과 새땅을 건설하실 준비가 되셨을 때에, 그는 급진적으로 배도한 교회들에게 심판을 가져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치 사악한 앗수르와 바벨론을 이용하시어 고대 이스라엘을 멸하신 것과 같이, 이 무서운 사역에 있어, 사단을 이용하신다. 사단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단이 승리한 것으로 여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심판을 가져오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20 장 9 절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불은, 세상의 마지막 날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한다. 이 구절은, 마지막 날 불 못 속에 던져질 하나님의 원수들 ( 구원받지 못한 자들 ) 에게 임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강조한다. 요한계시록 22 장 18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 재앙 "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어 심판을 경고하신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에스겔 38 장 역시 사단과 세상의 악한 자들의 똑같은 결말에 대하여 말한다. 18 절로부터 23 절까지를 읽어보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가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내가 투기와 맹렬한 노로 말하였거니와 그 날에 큰 지진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서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모든 산 중에서 그를 칠 칼을 부르리니 각 사람의 칼이 그 형제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온역과 피로 그를 국문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떼와 그 함께한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하리라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
이 구절은 심판에 대한 언어이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사단이 마지막 승리자가 아님을 확신시켜준다. 우리가 말세에 가까워짐에 따라, 사단이 승리하고 있는 듯 보일 것이다. 특별히 이적과 기사를 앞세우는 거짓 복음들이 번성한다. 실제로, 그들은 회중 가운데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성경은 점 점 더 그들의 궁극적인 권위로서의 위치를 잃어간다. 선포되는 구원 계획이 사람의 눈에 논리적이고, 자애로우며, 상식적일지는 모르나, 그것은 하나님의 권고의 말씀 전체가 담긴 성경의 구원계획은 아니다. 참으로 믿는 자들은 점 점 더 외로워진다. 그들은 어찌하여 그리스도의 소명이 이토록 효능을 상실할 수 있는 지 의아해 할 것이다.
그 때에,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사단이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믿는 자들의 정당성이 입증될 것이다. 아, 영광스런 구원이여! 그 모든 일을 하심에 신실하신, 영광과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해롤 캠핑씨의 오픈 포룸에서 발췌한 " 방언 " 에 대한 문답
캠핑 : 안녕하십니까? 오픈 포룸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질의자 : 저는, 방언을 말하는 문제에 관련하여, 성령 세례에 대한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특별히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성령 세례와 방언을 말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캠핑 :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먼저, 성령 세례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봅시다. 구약에서 구원을 가리키는 네 가지 표징으로부터 시작해보기로 합시다.
첫째, 할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표피를 잘라내어야 함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우리 육신과 육신에서 오는 죄 된 욕망을 베어내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4 장 4 절은 이와 같이 말합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
둘째, 번제가 있었습니다. 곡물로 드리는 제사와 동물을 희생하여 번제로 드리는 제사는, 우리를 위하여 번제가 되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10 장 5 장으로부터 7 절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셋째, 피흘림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양이나,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9 장 22 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넷째, 구약시대에 사용된 물로 씻는 세정식의 표징은, 의례적으로 그 사람의 죄가 씻겨졌음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임명받을 때, 그들이 세정식을 치렀습니다. 세정식이나, 혹은 물로 씻는 예식은 신약시대에도 사용되는 표징입니다.
태초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나, 모두 그들의 죄가 씻겨져야 하며, 거듭나야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에게 영원한 하나님이신 성령이 주어집니다.
오순절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자격을 주시고, 그들이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나누게 하심으로써, 세상을 복음화하시는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일에 있어, 여러 다른 언어를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물로 세례를 받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시대의 믿는 자들도 구약시대의 믿는 자들이 구원받았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신약시대의 다른 점은, 믿는 자들 모두가 복음을 나눌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 장 5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구약시대의 표징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여 볼 때, 구약시대의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오래 되지 않아,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신약시대의 복음화 사역에 증인이 될 자격을 받게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 들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 세례 " 라는 단어는 " 씻다 " " 정결케하다 " 혹은 " 순결케하다 "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의 죄가 씻겨진 사실을 나타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기적이나, 이적과 기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 장 18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에서 기적이 일어난 곳마다, 그것은 세상을 복음화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하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한 실례였음을 우리가 발견합니다 ( 사도행전 2 장, 8 장, 10 장, 그리고 19 장 ). 사도행전의 이러한 실례이후로는, 누군가가 구원받을 때 외형적으로 기적이 일어난 기록이 성경에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쓴 바울의 서신, 12 장, 13 장, 그리고 14 장에서는, 그러나, 우리가 그 교회 안에서 알 수 없는 언어, 혹은 방언으로 알려진 현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을 포함하여 그 교회 안의 몇 사람들에게 주신 은사로서,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알 수 없는 언어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 현상은 성령세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들이 구원받을 때, 선물로 받는 은사도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서 이 은사를 받은 자들은 그것을 해석할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을 지시받았습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하신 것을 회중과 나누어 회중에게 덕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당시에는 아직 하나님께서 성경을 완성하시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AD95 년 쯤에, 요한계시록을 쓰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성경을 완성하시고,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 장 18 절과 19 절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말씀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으로부터 더 이상의 메시지가 올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버리셨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는 어느 누구도 환상이나, 방언, 또는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올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규칙을 위반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일어난 것과 같은, 방언이나 환상의 현상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AD95 년 이후로, 신약시대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제법 영광스러워 보이는 방언이나, 환상을 받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하면, 이러한 활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나온 것이거나, 혹은 사악한 근거에서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환각일 수도 있으며, 그 이유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우리의 정신이 그만큼 교묘하기 때문입니다.오늘날, 누구라도 자신이 죄인인 것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았을 때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께 자비를 호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성경을 신뢰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어, 그 또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가 구원받을 때, 즉, 그가 거듭날 때에,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의 죄가 씻겨지고, 성령이 그와 함께 거하십니다.
질의자 : 그러면, 고린도전서 13 장 9 절과 10 절에서,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 한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러한 은사들이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될 때에는 없어질 것이라는 뜻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필요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또한 마가복음 16 장 17 절과 18 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고 말합니다.
캠핑 : 고린도전서 13 장은, 방언이 그치게 될 시기는 말하지 않지만, 단순히 방언이 그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언과 지식은 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9 절부터 12 절까지에 걸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볼 때에, 즉 우리가 천국에 갈 때에는, 그것들이 폐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 장 18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만일 네가 신성한 진리를 성경 외의 다른 출처에서 찾기 원한다면, 네가 곧 이 책에 적힌 재앙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시며, 그것은 즉, 네가 구원받지 못한 자이며, 지옥의 대상임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적과 기사가 지금도 여전히 올 것이라고 성경이 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적과 기사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언급하며, 방언을 말하는 것은 물론 이적입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가 고린도전서 14 장에서 읽습니다. 이적을 의미하는 희랍어는 "simeon" 이며, 이는 역시 " 기적 " 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특별히 이적과 기사를 말세의 교회에 관련하여 언급하며, 불길하게도, 그리고 불행히도, 말세에 근접하여 일어나는 이적과 기사에 대한 모든 구절들은 사단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24 장 24 절에 다음과 같이 말씁하십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우리가 데살로니가후서 2 장 3 절과 4 절에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
불법의 사람이 성전에 앉는 것은, 사단이 교회 안을 다스리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사단은 거짓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따르는 자들이 거짓을 믿도록 만드실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들이 심판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 장은, 땅에서 나온 짐승과 또 다른 둘 째 짐승에 대하여 말합니다. 두 번 째 나온 짐승은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생기를 주어, 이적을 행하게 합니다. 이러한 복음들은 사단이 만든 것으로서, 그것으로 인하여 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높은 정도로, 온 세상 백성들을 노예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는 광명의 천사로 올 것이며, 그의 복음의 신빙성을 이적과 기사를 통하여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사단은 거짓말의 거장입니다. 요한계시록 16 장 13 절과 14 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이 구절은,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미혹하러 오는 거짓 선지자들과 짐승에 대하여 말합니다. 말세에 근접하여 일어나는 이적과 기사에 관련된 모든 구절들은, 사단의 활동과 관련됩니다. 이것은, 매우 불길한 것으로서, 우리가 오늘날 극도로 조심해야 함을 지적하며,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 종말의 시점에 매우 가까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성경에서만 신성한 진리를 찾아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 전체가 신성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단은 온갖 종류의 방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온갖 불가사이한 할동을 가지고 옵니다. 교회를 떠나서도, 그는 마법사, 점판술, 점술카드, 등을 통하여 옵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는 마술적인 활동을 전개합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11 장 14 절에서,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라고 말함으로써 사단의 활동을 경고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단단히 무장함으로써, 오직 성경만이 신성한 진리를 찾아야 할 곳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질의자 : 선생님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 성경에 더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만, 하나님께 그리 친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반복하는 말로써 방언이 사용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단순히 하나님을 높이 올리는 일로 사용될 수는 없습니까? 말씀을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용도로 방언이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가지가 아닌,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네가지의 복음서를 주셨습니다.
캠핑 : 그러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위반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의 계획은,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신 모든 정보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말씀으로 강건해지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119 편 11 절에,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 복음서를 주심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가야합니다. 우리가 만일, " 글쎄요.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 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질의자 :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그다지 깊이 관여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 방언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에 깊이 들어가도록 권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 하지 않았습니까?
캠핑 : 그 말씀은 고린도전서 14 장 39 절에 있는 말씀으로서, 고린도에 있던 교회 안에서, 방언이 ( 우리가 이 언어에 대하여 자세히 공부할 때 알게 될 ) 일종의 문제가 되었을 때, 방언을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우리는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이 한 장의 말씀을 성경의 전체에 비추어 읽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의 율법에 따르면, 남자들은 일년에 세 번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일년에 몇 차례 예루살렘에 가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까? 성경에 그렇게 써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계명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성경의 다른 모든 부분에 비추어 그 계명을 읽을 때, 이러한 의례적인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신약성경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그 계명을 따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인즉,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고린도전서 14 장 11 절에 하나님께서, 방언에 관한 규칙을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2 장 18 절에, 그분의 말씀에 관하여 그 이상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린도전서 14 장 11 절의 말씀을, 요한계시록 22 장 18 절과 신명기 13 장 1 절부터 10 절까지, 그리고 신명기 28 장, 그리고 그 밖의 이 문제에 관한 다른 말씀들에 비추어서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달으면,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우리가 사단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서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상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사단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 내가 매우 종교적인 어떤 사람을 올무에 빠지게 하고자한다. 나는 물론 무서운 뿔이나 뽀족한 꼬리를 달고 그에게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그에게 접근할 것이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엿한 사신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성경만이 권위가 아니라는 사상을 주입시킬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을 그 외의 다른 권위에 비추어 이해하기 시작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그는 더 이상 성경에서만 진리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사단은 매우 조심스럽게 참 복음과 거의 흡사한 거짓 복음들을 가지고 옵니다. 그는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대단히 기만적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 사람은 완전히 무방비 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성경이 아닌 다른 출처에서 온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매우 친숙해 질 것입니다.
사단은 거짓말의 아버지입니다. 한 동안,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 다음, 서서히,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말 한 마디,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것을 조금씩 더할 것입니다. 사단은 거짓말의 거장입니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반쯤은 진리가 되는,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거룩해 보이는 환상과 함께, 근사하고 행복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보의 근거를 신뢰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혹시 사단이 성경에 기록된 어떤 말씀에 관련이 되지 않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질의자 : 제게 두 가지 질문이 더 있습니다. 첫째로, 요한계시록이 완성되었을 때, 구약과 신약의 성경 전체가 한 책으로 편집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캠핑 : 네. 그렇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구약성경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질의자 : 그러나, 모든 것이 구약과 신약으로 편집된 한 책 안에 한 가지 형태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요한계시록 22 장 18 절의 말씀은, 제가 보기에는, 요한계시록에 만 한정된 것으로서, 그 예언에 아무것도 더하지 말 것을 가리킵니다. 저는 방언의 은사나, 치유의 은사, 또는 어느 다른 성령의 은사들이, 어떤 시대에 와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증거를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느 시대에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캠핑 : 그렇게 믿는 것은 당신 자신의 권한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요한계시록은 성경 전체에 완전하게 밀착된 한 부분입니다. 이제, 당신이 요한계시록에 한 장을 더하면, 성경 전체에 그것을 더한 것이 됩니다. 성경이 완성된 후 5 년 안에 그것을 더했든지, 아니면, 1,500 년이 지난 후에 그것을 더했든지, 여전히 당신은 성경 전체에 무엇을 더하려 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이후에는, 그 어느 것이라도 거룩한 정전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마감하는 구절들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한계를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기간 동안 쓰여진 모든 책들을 살펴보고, 그것이 다른 어느 것도 아닌, 바로 지금 우리가 가진 성경임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안에 서로 밀착된 응집력이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 제가 부드럽게 말씀 드리지만, 또한 단호히 말하겠습니다 ) 만일 당신이 요한계시록 22 장 18 절의 말씀을 읽을 때에, 오늘날 여전히 하나님께서 환상, 음성, 그리고 방언, 혹은 그 어느 것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다는 전제를 받아들인 입장에서 본다면, 성경만이 지침서가 되며, 권위가 되는 것으로 단정을 내린 사람이 요한계시록 22 장 18 절과 같은 말씀을 이해할 때와 같은 식으로, 당신이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성경 외의 다른 부수적인 정보들을 성경과 균등한 위치에 놓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다른 해답을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오늘날의 방언, 환상, 등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제게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물론,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성경 밖에서 얻은 정보를 사용하도록 허용할 때에, 당신이 도달하게 되는 결론입니다. 사실인즉, 당신은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대할 때, 하나님 말씀에만 한계를 두는 사람들이 얻는 결론과는 당연히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성경에 무엇인가를 더하려 하는 순간, 이런 환상, 저런 방언, 혹은 그 어느 것이라도, 한 사람이 이것을 더하고, 또 다른 사람이 다른 것을 더하며, 누군가가 또 다른 무엇인가를 더하여, 그러한 모든 새로운 정보에 비추어서 성경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당신은, 결국 정처 없는 곳으로 당신을 끌고 가는 복음과 함께 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확히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거짓 복음들이 온 사방으로 확산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참 복음은, 성경으로만 그 한계를 정합니다. 오직 성경과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만 진리가 발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