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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시대의 끝
본 학습 머리말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희미한 윤곽을 간파하는 놀라운 안목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보았다. 그러나 믿는자들이 휴거되기 때문에 교회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그들의 교리를 우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그리고 우리는 휴거가 이 땅이 존재하는 마지막 날에만 일어날 수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는 사건중의 하나가 믿는자들의 휴거이다. 신학자들이 정의하는 "휴거"라는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직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믿는자들이, 역사 속의 어느 시점에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 때에 그들이 공중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이에 대하여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나 휴거시기에 관하여 풀리지 않는 궁금한 상황들이 전개된다. 어떤 사람들은 휴거가 세상의 마지막 날로부터 1007년 전에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휴거가 마지막 날부터 1003.5년 전에 있을 것이라고도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1000년 전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건은 바로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이 휴거의 시기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불분명한 것인가? 이 시기에 관한 성경의 언어는 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까?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성경에서 그 답을 좀 더 명확하게 알기를 원하며, 그럼으로써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큰 환난이 믿는자들에게 어떻게 특별히 관련되는지 알기 원할 것이다. 더욱이 휴거시기에 관한 명확한 이해는, 종말에 관련된 다른 많은 세부적인 사항을 이해하는 데에 지대한 도움을 줄 것이다.
놀랍게도 성경은 휴거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한다. 휴거는 성경이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건이 아니다. 종말과 심판에 관련하여 휴거의 시기는 성경에 분명하게 잘 기록이 되어 있다. 휴거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한 연쇄적인 사건들 중의 하나임에 한 치의 의심도 할 필요가 없다.
본 학습에서 우리는 휴거를 가르치는 몇 가지 다른 성경말씀을 조사해 볼 것이다. 성경 말씀을 자세히 공부하면서 우리는 시기에 대한 각각 다른 경로를 발견할 것이며, 각각의 경로들이 피할 수 없는 똑같은 한 결론에 우리를 이끌어 줌을 발견할 것이다. 믿는자들의 휴거는 세상의 종말에 일어날 것이다. 휴거는 우리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같은 시간에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불로 세상을 멸하실 준비를 마치신 때에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 중대한 사건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주시는 풍부한 정보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에 대한 첫 번째 경로를 살펴보자.
마지막 나팔과 휴거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에 다음과 같이 읽는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성경에서 잠든다는 것은 죽음을 상징한다). 첫째로, 죽지 아니하고(잠이 들지 아니하고) 즉시 부활한 몸을 받을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언어가 명확히 휴거에 관한 것임은, 53절에서 믿는자들이 썩지 아니할 몸을 받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를 알려주신다. 이 일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시기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나팔 소리와 함께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성경말씀으로 성경말씀을 해석해야한다는 원칙을 따른다면, 마지막 나팔 소리에 관련된 구절을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성경 구절이 발견되면, 나팔 소리가 언제 날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5-18절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 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때로소이다 하더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곱번 째 나팔소리와 마지막 나팔소리가 날 때에 함께 일어날 사건에 대한 윤곽을 주신다. 그 때에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1.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을 때가 되었다.
2. 성도들이 상을 받을 때가 되었다.
3. 멸망케 한 자들을 멸하실 때가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일곱 번째 나팔이 의미하는 것은, 심판 날이 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또 믿는자들이 그들의 상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신호이다. 그 때는 악의 세력이 지옥으로 던져질 때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나팔 소리는 마지막 심판 날이 왔을 때이며, 사단이 불 못에 던져질 날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에 믿는자들의 휴거가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날 것임을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선포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일곱 번째 나팔 소리와 함께 심판 날이 올 것이라고 한 사실로 보아, 휴거가 심판 날과 동시에 일어날 사건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더욱이 믿는자들이 받을 상은 부활한 영광스러운 몸을 그들이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소돔의 멸망과 휴거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로부터, 휴거가 세상을 심판하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시간에 일어날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이제는 휴거가 일어나는 시각을 알아보는 데에 도움을 주는 두 번째 경로를 살펴보자. 누가복음 17장 28-37절에 다음과 읽는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자리에 누워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할 것이요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두 남자가 들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소돔의 멸망을 마지막 날의 심판을 상징하여 사용하신다. 우리는 롯과 그의 가족이 목숨을 구한 사실이, 심판과 동시에 일어날 휴거를 상징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소돔의 멸망 직전에, 하나님은 롯의 가족을 구출하시기 위하여 천사들을 보내셨다(창 19). 구출하는 장면에 있어서, 하나님이 소돔과 그 주변의 다른 사악한 도시들 위에 불과 유황을 내려 무참하게 멸망시키셨다.
누가복음 17장 30절에,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소돔의 멸망을 심판 날과 연결시키신다. 하나님은 또한 롯과 그의 가족의 구출을 휴거에 연결시키신다. 34절에서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할 것이요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주목하라.
소돔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이 병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악함이 절정에 도달하여 심판을 초래한 소돔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사악한 자들과, 참으로 믿는자들을 대표한 롯과 그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롯과 그의 가족은 사악한 도시의 인구들 가운데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늘날도 이와 같다. 세상은 대부분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의 광대한 인구 중에, 매우 적은 수의 참 믿는자들이 존재한다.
소돔을 정죄하는 심판의 날이 왔다. 그들이 행한 죄악의 잔이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 값에 따라 무참하게 그들을 멸하셨으나, 그 심판에 바로 앞서 롯을 구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에 임박하여 롯의 아내는 심판을 받고 멸망당하였다. 세상의 종말도 이와 같을 것이다. 만국의 죄악이 절정에 이르고, 심판을 받을 시기가 되면, 하나님께서 믿는자들을 구출하시기 위하여 천사들을 보내실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나,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데려감을 당한 자는 데살로니가후서 4장 17절이 가르치는 대로 공중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게 될 것이다. 버려둠을 당한 자는 사악한 소돔이 심판을 받은 것처럼, 심판대 앞에 서도록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휴거는 심판 날과 동시에 일어날 사건임을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다. 소돔의 멸망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한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올 휴거와는 완전히 일치한다.
노아의 홍수와 휴거
성경에서 발견하는 세 번째 경로는, 휴거가 심판 날과 동시에 일어날 것에 대한 강한 확신을 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노아의 홍수때 일어난 일들과, 심판 날에 일어날 일들을 비교하여 말씀하신 것에서 발견된다. 마태복음 24장 37-41절을 읽어보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 세상을 멸한 홍수에 관련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병행하는 언어를 세우신다. 노아시대에 세상을 멸한 홍수가 심판 날의 상징이었던 이 병행성은, 베드로후서 3장 3-7절에도 조성되어 있다. 이 구절을 읽어보자.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에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리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창세기 7장에 기록된 홍수의 사건에서, 우리는 홍수가 일어나기 7일전에 하나님께서 칠일 후에 홍수가 올 것에 대하여 예고하신 것을 읽는다. 그러므로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창세기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창세기 7:4: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 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우리가 창세기 7장 10절에,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예고하신 말씀 그대로, 칠일이 지난 후 홍수가 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성경은 홍수가 내리기 시작한 날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사실과, 홍수가 일어난 정확한 날짜를 기록하였다. 창세기 7장 11-13절을
읽어보자.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 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 졌더라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그들을 쓸어낼 때까지 먹고 마시기를 계속하였다고 하셨다. 누가복음 17장 27절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멸하였으며"
우리는 여기에서 홍수와 심판 날 사이의 병행되는 점을 분명히 볼 수 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죄로 인하여 저주받은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올 심판 날에도 역시 믿는 자들이 죄로 인하여 저주받은 세상에 극소수의 남은 자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홍수가 시작되려 할 때, 노아와 그의 가족은 천국의 안전을 상징하는 방주에 들어갔으며, 심판 날에는 믿는자들이 휴거당하는 동시에,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은 지옥으로 옮겨질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마 24:40). 데려감을 당하는 자는 노아와 같다. 마치 노아가 안전한 방주에 들어간 것과 같이 믿는 자들도 역시 그리스도께 들림을 받아 안전하게 구원을 얻는다.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을 자들이다. 이들은 마치 방주 밖에서 심판을 받게 된 자들과 같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휴거가 심판 날과 함께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 그가 부활의 사실성을 여러 가지로 증명해 보이셨다(행 1:3). 마찬가지로, 휴거에 관련한 그의 가르치심은 성경의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이 진리가
가르치는 네 번째 경로를 성경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죽은 자들의 부활과 휴거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17절에서 우리는 휴거에 관하여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구절을 발견한다. 우리는 휴거의 시기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네 번째 경로에 대한 학습의 시작으로 이 구절을 살펴볼 것이다. 그 구절을 읽어보자.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이 구절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첫번 째 진리는, 휴거가 우리 몸이 부활하는 날과 같은 날에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오실 때에 잠들어 있던 자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고린도후서 5장 8절에서 육신에서 벗어남은 주와 함께 하기 위함이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가르치신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구원을 받았을 때 이미 부활한 새로운 영혼을 받았으므로, 그 영혼의 존재로 그리스도께 갈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죽어서 잠자던 자들은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던 모든 자들이며, 데살로니가후서 4장 14절에서 말한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올 것이다. 그 다음 무덤들이 열리고 죽었던 자들의 몸이 부활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아직 육신의 죽음을 맞지 않은 모든 믿는자들이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바로 이때에 무덤에서 부활한 몸들은, 아직 육신의 죽음을 맞지 않고 새 몸을 받아 부활한
믿는자들과 함께 공중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원히 함께하게 된다. 오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만이 이 땅에 남아서 그들의 죄로 인하여 내려질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한 몸에 대한 실상을 좀 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은 이 몸이 부활하는 정확한 시기에 대하여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 전에 알게 된 바와 같이, 살아있는 믿는자들의 휴거는 과거 역사 속에 살다 죽은 믿는자들의 몸이 부활할 때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자들의 몸이 부활하는 시기에 대한 정보는, 우리에게 휴거의 시간표를 제공해 줄 것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살다가 잠들은 자들이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사건에 대하여 네 번에 걸쳐서 선언하신다.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마지막 날"이란 문구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문구는 오직 여덟 번만 성경에 적혀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문구를 선택하고 사용하심에는 매우 신중을 기울이셨음을 우리가 알고 있으며, 이 문구가 중요한 진리를 강조하도록 선택되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잠시 이 구절들을 설펴보자.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같은 문구가 요한복음 6장에 네 번에 걸쳐 사용되었다. 그 외의 또 다른 네 번의 참조는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1: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한복음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7:37: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느헤미야 8: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요한복음 11장 24절에서는, 요한복음 6장의 네 구절을 통하여 제시하신 진리를, 마르다가 이해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믿는자들의 부활은 마지막 날에 일어난다.
요한복음 12장 48절로부터, 우리는 마지막 날이 심판 날이며, 이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그들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요구하시고, 그들을 지옥으로 옮기실 것임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자들의 부활이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며, 이는 심판 날과 동시에 일어날 사건임을 알게 된다.
우리 몸의 부활이 휴거와 같은 날에 일어남을 알게 되었으며, 이제 이러한 구절들로부터 우리는 휴거가 심판 날과 동시에 일어날 것을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17절로부터 알게 되었다.
"마지막 날"에 대한 두 개의 남은 참조 구절들을 보기 전에, 요한복음
12장 48절에 대하여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도록 하자. 만일 심판 날이 마지막 날이라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부활도 역시 마지막 날이 될 것이며, 이는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 바다가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죽음과 지옥이 죽은 자들을 내어줄 것이며, 그들이 모두 심판을 받고 지옥 불 못에 던져 질 것이라고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들의 부활 역시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들 모두가 다 일반적으로 같은 때에 부활할 것임이 틀림없다.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는 믿는자들의 부활이 한번 있고, 또 다른 때에 악한 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
요한복음 5장 28-29절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다. 아무도 무덤 안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서 우리는 믿는자들이 큰 호령을 듣게 될 것이라고 읽는다. 이 구절에서 우리 주님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선포하신다.
요한복음 5장 29절은 무덤에서 나온 자들의 종착점이 두 곳 중 한 곳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의 의로 자신의 죄를 씻음 받고 선한 일을 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오며, 악한 일을 한 자들, 즉 자신의 죄가 씻음 받지 못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심판과 저주를 밭기 위하여 부활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대한 성경말씀을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17절과 요한복음 5장 28-29절을 비교해 봄으로써, 휴거와 믿는자들의 부활과, 안 믿는자들의 부활과 심판의 날이 모두 세상의 마지막에 일어난다고 성경이 선명하게 가르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모든 구절들이 서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에서 "마지막 날"이란 문구를 사용한 여덟 개의 구절들 중 여섯 개의 구절들을 점검해 보았다. 나머지 두 구절들은 아래와 같다.
요한복음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느헤미야 8: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일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장막절(초막절)의 마지막 날
우리가 "마지막 날"과 관련된 모든 구절을 분명하게 점검해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 두 구절을 또한 살펴보아야 한다. 이 두 구절은 장막절과 관련하여 참조가 된다. 사실상 두 구절이 모두 장막절의 마지막 날을 지적한다.
장막절의 마지막 날이, 휴거와 심판 날에 어떻게 관련이 되는가? 우리는 장막절이 이 주제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장막절의 성격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장막절은 두 가지의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첫 째로 장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 체류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로, 장막절은 추수가 완성되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레위기 23장 42-43절을 읽어보자.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장막절은 레위기 23장 34절에서 읽는 바와 같이, 일곱 번째 달 제 십오일에 경축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이 구절에서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체류하던 때를 기념하는 절기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 땅이 어떻게 안식을 얻었는지를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우리의 안식은 완성을 이루게 된다. 지금은 우리가 외국인과 이방인처럼 살고 있으나, 우리가 부활한 새로운 몸을 받게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살전 4:17). 그러므로 이 절기가 왜 그리스도의 재림과 일치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때는 바로 우리가 부활한 새로운 몸을 받게 되는 때이다. 그때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며, 비로소 우리가 살던 광야에서의 체류가 끝나게 된다.
장막절을 기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추수가 끝났음을 경축하는 일이었다. 출애굽기 23장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한 말씀을 읽는다. 이 구절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수장절(Feast of Ingathering)을, 장막절(Feast of Tabernacle, 초막절)과 마찬가지로, 한 해의 마지막을 가리켜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레위기 23장 39, 4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절기와 같다.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 할 것이라"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은, 이 절기가 한편으로는 한해의 마지막 수확을 경축하였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광야에서의 체류가 끝났음을 경축하는 절기라는 점이다.
장막절의 경축은 일곱 번째 달 제 십오일에 시작하였다(레 23:34). 일곱 번째 달은 한 해의 끝으로부터 몇 개월이나 앞서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달을 "연종" 또는 "한 해의 마지막"이라고 부른다(출 23:16).
이 절기가 말세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왜 그 절기를 한 해의 마지막(연종)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추수 때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마 13:30, 39).
마태복음 13:30: 둘 다 추수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을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장막절이 한 해의 추수와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과 관련하여 경축되었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의 마지막을 추수로 비유하시어 말씀하신 연유로, 우리는 장막절과 세상의 마지막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끝 날(last day)"이라는 문구가 믿는자들의 부활과, 심판 날, 그리고 장막절과 관련되어 발견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래의 대조표는 이러한 사건들 간의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
| 장막절(Feast of Tabernacle) |
세상의 끝(End of World) |
| 한 해의 끝(End of year) |
시간의 끝(End of time) |
| 곡식을 추수할 시기(Harvest time for crops) |
인류를 추수할 시기(Harvest time for mankind) |
|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의 청산(End of wilderness sojourn for Israel) |
믿는자들의 광야 생활의 청산(End of wilderness sojourn for believers) |
| 마지막 날(출 23:16) |
마지막 날(요 12:48, 요 6:39-40) |
그러므로 느헤미야 8장 18절과, 요한복음 7장 37절에 하나님께서 왜 "끝 날(last day)"이라는 문구를 장막절에 연관하여 사용하셨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장막절의 이야기를 떠나기 전, 주목해야 할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장막절을 마지막 날, 혹은 말세에 연결시킨 점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한 해에 세 번에 걸쳐서 하나님 앞에 나와야만 했으며, 이것은 출애굽기 23장 14-17절에 기록되어 있다.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첫번 째 절기는 무교병을 먹는 절기이며, 유월절로부터 시작되며, 유월절과 동일시된다. 이 절기는 정월 제 십 사일 저녁에 시작된다(레
23:5). 그리고 제 십 오일이 지난 후 칠일 동안 계속되었다(레 23:6, 신 16:1-3). 이 유월절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실 것을 예기하던 날이었다. 그 절기는 첫 열매들 중의 첫 째를 가져오게 하셨다. 첫 열매가 곧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두 번째 절기는 '맥추절' 또는'첫 열매들' 혹은 '칠 주간의 절기'라고 하며, 이 절기는 유월절 기간에 오는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칠 주간을 완전히 경축하였다. 이 맥추절은 유월절 후 오 십일이 지나서 오기 때문에, '오순절(Pentecost)'이라고 불린다(영어의 'penta'는 다섯 무리를 뜻함). 이 날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결과로서 시작되는 영적인 추수를 예기하는 날이었다. 이 추수는 전 교회시대에 걸쳐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을 지적한다. 그들이 바로 오순절의 첫 열매로 추수된 수확들이다.
세 번째 절기는 모든 남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초막절(장막절)이며, 속죄일(일곱 번째 달의 제 십일)을 먼저 지낸 다음에 오는 절기였다. 초막절(장막절)은 일곱 번째 달의 제 십 오일로부터 팔일 동안 계속되었다(레 23:27, 34, 39). 이 날은, 우리가 앞으로 공부하면서 알게 되겠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결과로 오는 영적인 모든 추수의 완성을 예기한 절기였다.
지금 우리가 대하는 바 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감격을 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대속의 사건이 성취됨을 예기하고 상징하는 절기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축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 날들이 가리키는 영적인 현실을 가져오시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33AD 에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기념하는 동안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의 칠 주간의 절기인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영혼의 추수가 시작되었다. 그 때가 바로 열여덟 민족으로부터 무려 3,000명이 구원을 받은 첫 추수의 열매를 보인 때였다(행 2:41).
그러므로 중요한 세 가지 절기 중 두 가지는 유대인 남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여행할 때로서 특히 강조되었으며, 바로 이 절기에 하나님의 구속계획이 실제로 실행되었다. 유대인의 유월절은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당하신 바로 그 날이다. 첫 열매들을
경축하는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은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내려오시어 영적인 추수의 첫 열매들이 거두어진 바로 그날이다.
한 가지 남은 절기는 장막절(초막절), 또는 수장절이다. 마치 다른 두 중요한 절기들이 실제적인 시기로 확인된 것처럼, 이 절기의 실제 시간이 완료될 때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가능성을 성경이 제안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당연함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끝날)"이란 문구를 장막절과 함께 사용하신 점이다. 장막절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일치하며, 이는 마치 우리 몸의 부활과 심판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경에 "마지막 날"이 기록된 여덟 개의 구절에서 장막절이 말세를 지적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게 된다. 그것은 이 지구가 존재하는 마지막 순간을 가리키며,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심판을 위하여 돌아오실 것이다.
요한복음 6장과 그 밖의 다른 구절들과 같이, 믿는자들의 부활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구절들에 비추어 볼 때,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휴거를 심판 날과 말세에 연결시킨 사실을 우리가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펴본 네 번째 경로는 앞에서 조사한 세 가지 경로와 정확히 부합된다.
환난과 휴거
그 동안 우리는 세상 마지막 날에 휴거가 일어날 것임이 틀림없다는, 네 가지의 개별적이며 뚜렷한 성경적인 경로를 발견했다. 휴거가 인류의 부활, 그리고 심판의 날과 동시에 일어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하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 질문을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로 하자.
마태복음 24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세상이 끝나기 직전에 일어날 표적과 사건들에 관한 윤곽을 주신다. 그가 선포하신 마태복음
24장 21-31절의 말씀을 읽어보자.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그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우리가 이 구절들을 살펴보면, 휴거는 믿는자들이 견디어 내어야 하는 마지막 환난 직후에 올뿐만 아니라, 세상의 마지막과 동시에 일어날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즉 휴거는 심판의 날과 동시에 일어남이 분명하다.
21절과 22절에는, 점 점 더 심해지는 환난이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이 환난이 감해질 것이다. 앞서 한 공부에서 우리는 이 환난이 내포한 의미를 발견했다.
선택받은 자들은 누구인가?
22장에서 언급하는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우리가 확실하게 공부를 하겠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단어인 "택한 자"는, 희랍어인 "eklektos"이며, 신약 성경에 약 23 번 정도 쓰였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 24장이 이방인들이 아닌 오직 이스라엘 민족에 관한 말씀이라는 근거에서 말하기를, "택한 자"는 오직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만을 가리킨다고 가르친다. 만일 우리가 이런 사상의 맥락을 쫓아가서, 마태복음 24장이 마치 예수님께서 유대인이었던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이므로 이 말씀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한다면, 우리는 요한복음 3장의 말씀도 이방인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논쟁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이었던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로마서는 로마에 있던 교회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므로, 오늘날의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면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어진 선지자였음으로, 이방인들에게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이런 근거에서 보면 오직 성경의 특정한 부분만이 신약시대의 믿는자들에게 해당된 권위가 된다고 여겨질 것이다.
우리는 즉시 이런 성경해석에는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성경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한다. 성경은 그것이 말하는 전체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마태복음 24장, 요한복음 3장도, 또는 성경의 어느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 읽혀지고, 또 연구되어야 한다.
사실상 우리가 마태복음 24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전 세계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다. 24절에서 복음이 모든 나라로 전해 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8절로부터 31절에 그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돌아오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가 유대인들만을 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전 세계를 위하여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4장의 경고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마태복음 24장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 혹은 성경의 어느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에게 주시는 중요한 말씀이다.
"택한 자"라는 희랍어 단어로 돌아가서, 우리는 마태복음 24장 22절에서 그 단어가 "선택된 자" 혹은 "택한 자"라고 번역된 것을 발견한다. 성경에 23번에 걸쳐서 "eklektos"라고 씌어진 단어를 조사해 보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믿는자들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알게 된다.
마태복음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요한계시록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로마서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 이시니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디도서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믿는 자들이 곧 택하신 자들임을 염두에 두면, 마태복음 24장 22절이 가르치는 대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환난의 기간이 감하여 질 것이라고 한 것은, 마지막 환난을 거치는 동안 믿는자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근거에서 이 구절을 보면, 마지막 큰 환난 전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리에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큰 환난과 그리스도의 재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매우 상세한 시간표를 하나님께서 또 다시 주심을 발견한다. 마태복음 24장 29-30절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 말씀은 마태복음 24장 21-22절에서 말한 환난이, 그리스도 재림 전에 일어날 마지막 사건임을 강조한다. "후에 즉시"라는 단어는 환난과 29-31절에 말한 사건들 사이에 아무런 시간의 간격을 허락하지 않는다.
환난이 끝난 후 즉시 따라오는 사건들은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는 현상이며, 이는 시간이 종결됨을 가리킨다.
우리가 공부한 마태복음 24장으로부터, 믿는자들의 휴거는 시간의 체계가 끝날 때 일어난다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 수 있다. 그것은 큰 환난 직후이며 심판 날과 일치하여 일어난다. 휴거가 일어나는 시각에 관하여 이렇게 많은 증거들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이 놀랍지 않은가!
그동안, 우리는 휴거가 마지막 시간에 일어날 것을 지적하는 다섯 가지의 뚜렷한 경로를 발견했다. 이제 여섯 번째 경로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불법의 사람, 사단과 휴거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일어날 휴거를 지적하는 더 많은 정보를 발견한다. 믿는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두 가지 사건이 선행되어야 함을 이 구절에서 밝히신다.
첫째는 배도하는 일이며, 둘째는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일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불법의 사람은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 입 기운으로 그를 죽이실 것이다. 즉 악한 자들이 지옥으로 던져질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을 데살로니가후서 2장 1-9절에서 읽어보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법의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거짓 선지자들 혹은 거짓 그리스도들로 불리는 그의 사자들로 가장하여 오는 사단 자신이다. 이 사실을 우리가 이해하게 되면, 성경 전체에 비준하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사단이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고 있음을 이 구절에서 우리는 발견한다. 요한계시록 13장 4절에서 사단인 용이 또한 경배를 받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그러므로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불법의 사람이 경배를 받는다는 언어는, 사단이 불법의 사람임을 지적한다. 어떻게 사단이 사람으로 불릴 수 있는가? 그는 타락한 천사가 아닌가? 우리는 그가 사람으로 불리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람일 수밖에 없는 바벨론의 왕으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14장에서 타락한 루시퍼에 대하여 읽을 수 있으며, 문맥으로 보아 루시퍼가 곧 사단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루시퍼를 사람으로서 대하시는 말씀이 이사야서 14장 16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시키며"
사단이 사람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런 활동이 바벨론의 왕의 모양으로 미리 나타나기 때문이다(이 14:4). 요한계시록 18장이 가르치는 대로, 바벨론은 성경에서 사단의 왕국을 상징하여 자주 사용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병행성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한편으로 바벨론 왕에 의하여 지배되는 바벨론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단의 지배를 받는 사단의 통치 영역이 있다. 그러므로 사단이 바벨론을 지배한다.
사단인 불법의 사람이 성전의 자리에 앉는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시고 천하를 다스리신다(에 1:20-22). 그러므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권위를 가지고 다스린다는 말이다. 사단인 불법의 사람이 성전에 앉아 성전을 다스린다.
"성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성전이 실제로 건축됨을 말하는가? 성경 어디에도 예루살렘의 성전이 장래에 재건된다는 말을 읽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후에는, 사실상 예루살렘에 있는 거룩한 성전이 가졌던 의미는 끝이
났다. 대신에 성경은 믿는자들의 집단을 성전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 19-21절을 읽어보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5절에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하나님은 믿는자들의 집단이 성전임을 강조하신다. 그가 선언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조직체인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곳이 바로 사단이 활동을 하게 될 장소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불법의 사람(사단)이 성전(교회 혹은 믿는자들의 집단) 안에 자리를 잡고(다스림)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영이기 때문에, 믿는자들의 집단을 다스리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들을 통하여 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가지고 다스린다. 성경은 이런 종류의 활동을 고린도후서 11장 13-14절에서 말해준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이와 비슷한 기록이 마태복음 24장 24절에도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이 구절들은 사단이 극단적으로 전력을 다하여 활동하는 속임수를 강조한다. 그가 가져오는 복음은 참 복음과 비슷하여, 심지어 택한 자까지도 미혹하게 한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이런 선지자들이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말한 점을 유의하라. 사단은 가능하면 택하심을 받은 자 까지도 미혹할 정도로 참 복음과 비슷한 복음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 복음에 생기와 활력을 넣어 이적과 기사를 행하기까지 한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참 복음을 가져오실 때에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 것처럼, 사단도 이적과 기사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처럼 보이며, 예수님과 관련된 성격의 복음을 증거 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 공부하고 있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과 9절도 역시 이적과 기사를 말한다. 사단을 대표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올 것이며, 이에 대하여 9절 말씀에서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라고 가르친다.
물론 거짓 선지자들은 그러한 속임수에 빠져 자신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종들이라고 믿는다. 사단은 속임수의 거장이며 거짓의 아버지이다(요 8:44). 더욱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 10-11절은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오는 자들의 눈을 하나님께서 어둡게 하신다고 가르치신다. 이것은 그들이 진리를 믿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전에 사단의 활동을 지적하는 특별한 흔적이 틀림없이 있을 것을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알 수 있다.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오는 사단의 종들이, 참 복음이 선포되어야 하는 믿는자들의 집단 안에서, 권위를 가지고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진짜 선지자라고 믿으며, 참 복음이 될 수 없는 이적과 기사의 복음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로 하여금
사단에게 경배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게 될 가장 우선 되는 배도의 성격이다. 온 세상에 흩어져있는 회중들로 구성된 교단의 교회들은, 거짓 복음을 가져오는 자들로 침투당하여, 결국은 사단의 활동으로 넘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거짓복음의 위협을 깨닫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 복음이 이적과 기사에 초점을 두는지의 여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참 된 복음에 대한 정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신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구절들을 문자로 하나님께서 기록하시기 이전에는, 그 당시에 있던 성경 말씀을 통하여 그의 뜻을 선포하셨다. 그 외에도, 천사의 방문, 꿈, 환상, 음성, 또는 방언이라고 하는 알 수 없는 천국의 언어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가져오기도 하셨다. 그러므로 베드로나 바울, 그리고 고린도 교회의 몇 몇 회원들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서기인 사도 요한을 사용하시어, 계시하시는 말씀의 마지막 장, 요한계시록 22장을 쓰셨을 때, 그의 말씀이 완성되었음을 시사하셨다. 그 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환상이나, 음성, 또는 방언이 절대로 하나님의 계시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참 복음은 성경으로만 그 한계를 정한다.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 전체가 뚜렷하게 성문화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성경에 근거한 복음이외에 환상, 음성, 방언, 꿈, 혹은 교회 지도자들의 완전무결한 설교 등, 다른 원천에서 오는 것에 신령한 진리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곧 다른 복음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우리가 앞서 공부한 학습에서, 교회가 지지하는 교리가 철저하게
성경에만 근거한 것이 아닐 때에는,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서 온 교리임을 배웠다. 성경 교리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우리에게 주신 그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교리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 외의 다른 자에게 경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교리를 마치 하나님이 선포한 것처럼 지지하고 가르칠 때에는, 그것이 곧 사단을 경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이라도 성경의 권위와 같은 위치에 두는 순간, 성경 이외에 다른 근거에서 온 것을 신령한 진리로 생각하여 성경에 더한 복합적인 복음을 가지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성경 자체만이 아닌, 다른 근거에서 온 신령한 진리로 생각되는 것에 의하여 성경이 해석될 것이다. 그때에,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원칙에서 오는 결론과는 달리, 먼저 교리가 앞서게 된다. 요한계시록 22장 18절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 이외에 다른 출처에서 온 신령한 진리(환상, 음성 등)로 생각되는 것들은 하나님의 것일 수 없다. 비록 신령한 것을 받은 사람의 마음에서 온 것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은 사단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런 다른 출처에서 온 복음을 듣는 자들은 부지중에 하나님이 아닌 사단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앞서 한 공부에서 사람이 만든 교리는, 유다가 거짓 신들을 섬기던 산당과 같다고 배운 것을 기억하라. 교회시대에 사람이 만든 이러한 교리들을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묵과하셨지만, 마침내 교회시대의 교회가 하나님의 사역을 끝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교회에 심판을 가져오셨음을 우리가 배웠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으로 돌아가서, 7절 말씀에,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라고 읽는다.
"막는다(letteth)"는 단어는 "제재(restrain)"한다는 뜻의 고대 영어이다. 이 구절은 죄와 사단을 제재하는 자가 그 가운데로부터 옮겨진다고 가르치고 있다. 죄를 제재하는 자가 성령이며, 성령이 믿는자들 가운데 거하시므로, 이 구절이 교회의 휴거를 지적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죄를 제재하는 자가 하나님 자신임을 가르치는 면에서는 그들의 말이 맞다. 우리가 창세기 20장에 나오는 아브라함, 사라, 그리고 그랄(Gerar)의 왕인 아비멜렉을 둘러싼 사건의 기록을 회상할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하여 그랄 땅에 주거하기 위하여 가나안을 떠났다. 그곳에서 자신의 생명의 위협 때문에, 그랄 왕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사실상 그의 여동생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로 그랄 왕은 사라를 그의 처소로 데리고 갔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손을 대지 말도록 그 왕에게 경고하셨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 왕은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음으로써 경고에 응하였고, 하나님께서 창세기 20장 6절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인류의 본성에 관하여 성경이 선포하는 바와 같이, 이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를 제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이 심히 부패했다고 말한다(렘 17:9). 성경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증거, 그리고 훼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마 15:19). 오직 하나님께서 죄를 제재하시므로 인간은 적합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으며,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 동료간의 우애와 충성,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동정심과 같은 미덕을 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제재하시는 것이 믿는자들만을 위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참으로 믿는자들 안에 거하시지만, 성령이 그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성령은 믿는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세상에 있는 죄도 역시 제재하시는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 가운데에서 성령을 옮기실 때는, 믿는자들의 휴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믿는자들 자신이 제재하는 힘의 원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제재하시는 손을 옮겨 악이 번성하도록 허락하신다고 알려준다. 이것은 하나님이 배도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이 구절의 문맥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마태복음 24장은 불법이 성하여진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사단이 놓임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 모든 구절은 한 가지 같은 사건에 대하여 말한다. 즉 세상이 극도로 죄에 빠지도록 하나님께서 하락하시는 때가 올 것이라는 뜻이다. 그가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사단과 그리고 사단의 종들에게서 불법을 제재하는 일을 그치심으로써 이 일을 성취하신다. 그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사악해짐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활동은 또한, 복음이 그 안에서 선포될 때에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사단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제재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기억하는가? 누가복음 8장 12절을 읽어보자.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라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을 때, 약 3,000명이 구원을 받았다. 이때는 사단이 결박을 당하고,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이 더 이상 사단을 제재하지 아니하시며, 참으로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역사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처한 것임을 우리가 알게 된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절로 돌아가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찾으러 오시기 전에 불법의 사람이 먼저 나타나야 함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때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강림하심으로 그를 폐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즉 사단과 그를 따르는 모든 악한 자들(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심판을 받고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악한 자들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아야 할 곳은 지옥이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이 말하는 바, 주 예수님께서 강림하시고
믿는자들이 그 앞에 모이는 일에 대하여 주목하라. 하나님은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 믿는자들의 모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8절 말씀에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때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어, 악한 자들이 죽임을 당하고(즉, 심판받고 지옥에 던져짐), 믿는자들이 함께 모여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휴거)과. 사단과 악한 자들의 멸망(심판 날)이 동시에 일어남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휴거와 같은 사건이므로, 우리는 휴거가 심판의 날과 일치하여 일어날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또 다시 확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부한 다른 구절들과 서로 부합하는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며, 이 모든 내용은 휴거가 심판 날, 그리고 세상의 마지막 날에 온다고 가르친다.
결론
우리는 그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휴거 시기에 관련한 여섯가지 다른 경로를 성경 구절에서 살펴보았다. 그 구절들은 각각 믿는자들의 휴거가 심판 날과 동시에 일어날 것을 우리에게 명시해주었다. 참으로 이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
이 진리가 성경에 너무나도 분명하게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구주께서 다시 오시는 사건에 대한 세부적인 모든 가르침은, 이 진리에 비추어 연구되어야만 한다. 사실상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성경을 공부할 때에, 우리에게 꾸준한 일관성이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성경이 신뢰할 가치가 있는 완벽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직면하는 가장 큰 질문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은 적이 있는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였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셨음을 믿는가? 우리가 진실로 죄로부터 돌아서며, 그리스도께 순종하기를 열망하는가?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이 시기에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사실상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게 될 그의 택한 백성이 누구인지를 알 수는 없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우리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을 또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환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내가 만일 아직도 구원받지 못하였다면, 비록 내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전혀 알 수는 없으나, 또 내가 하는 아무 일도 내 구원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으나, 그의 기쁘신 뜻이라면 내 자신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수 있는 환경에 놓는 것이 현명한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열심히 성경을 읽고 공부할 것이다.
더욱이 비록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모든 개인의 삶을 낱낱이 알고 계시나, 나는 하나님께 구원을 위하여 호소하고 매달리며, 간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는 분에 넘치는 자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행동 자체가 나를 구원에 이르도록 아무런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나, 최소한 구원을 갈구하는 나의 간절한 호소를 하나님께서 듣고 계심을 나는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구원의 선물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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